Author: sungmg

  • 오다리

    내 다리는 오다리다. 오다리인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관련 동영상을 찾아 보니 걷는 자세를 교정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한다.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을 관찰하니 앞을 향해 다리를 살짝 벌린 자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지금 걷는 자세는 나 스스로 의도한 측면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시절, 남자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건달처럼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거리를 다닌다는 점이었다. 남자, 더 정확히는 남성성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겐 꼴불견이었다. 자랑할 것 하나 없어 병신 같이 마초적인 흉내나 내고 있다니.

    난 어릴 적부터 사회가 남자아이나 남성에게 부여하는 이미지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사회는 여성에게는 차분하고, 별 말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고 본 반면, 남성은 자신의 욕구 하나 통제하지 못하고 말성이나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정 욕구가 강했던 나는 전자의 이미지를 선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 아이들이 할 법한 성향과 성격, 모습, 자세를 따라하면 사람들로부터 예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성 모델 같이 걷겠다고 다짐했다. 스키 탈 때 브레이크 잡는 자세에서 다리를 펴고 사이를 줄인 무언가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렇게 다니면 추구하던 모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어서 일부로 이렇게 다녔다. 덕분에 지금과 같은 걷기 자세를 갖게 되었다. 생각과 다르게 바람 조금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멸치와 더 비슷해지긴 했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 인위적인 자세 교정(?)이 오다리를 만드는데 일조한 것 같다. 만약 내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면 키도 좀 더 크고, 집에 처박혀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냥 이런 생각이 드니 씁쓸해져서, 이렇게 글을 남겨 보았다. 앞으로 차차 고쳐나가면 되겠지…

  • 가장 넓은 길

    양광모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에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
    길이 나타날 것이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 나의 열등감

    어렸을 때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완만한 친구 관계와 이성 관계, 남부럽지 않은 외모와 성적을 갖고 싶었다. 따로 노력한 것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리 성장하리라 믿었다. 크면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적절한 순간 내 눈 앞에 데미안 같은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꿈꾸었다.

    지금 나는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 수 있는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실된 친구 하나 없어 처절하게 외롭다. 넓고 낯선 공간에 혼자 아무것도 없이 버려졌다. 진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바보가 된 느낌이다.

    남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 대해 담소를 나누면 화가 치솟는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나여야 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칭송하고 부러워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왜 정작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나인가? 내가 더 열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나보다 공부를 더 성실하게 잘 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연애를 하는 또래를 그토록 미워하면서, 동시에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 환장한다. 노력 따윈 하지 않지만, 나에게 있었던 조그마한 가능성으로 자기 위로나 하면서 우울함에 심취한다.

    우울함이 없었던 시절은 어땠는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심해 속으로 조용히 침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난 이제 그저 그런 사람이다.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우울이라도 포장해 동정을 사고 싶어하는, 죽을 용기조차 없는, 모든 것을 귀찮아 하는, 그런 한심한 사람.

    죽을 만큼 수치스럽다.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 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내가 하고 싶은 일

    삿포로로 여행가고 싶다. 복싱도 하고 싶다. 술도 원없이,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셔보고 싶다. 하지만 내 앞에 닥친 것은 수능이다.

    벌서 수능이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서 혼자서 놀다가, 저 멀리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는 노을을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왜 시간은 항상 느리게 갈까? 저 시곗바늘이 조금만 더 빨리 달렸으면, 눈을 잠깐 감았다 뜨면 중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지나간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한없이 순수한 영혼이라 가슴이 아려온다. 지금 나는 너무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내가 해내야 하는 목록은 점점 빼곡해지고, 꿈꿔왔던 일들은 점점 멀게만 느껴진다. 시간은 또 왜 이리 야속한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주가 지나간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해낸 것은 없지만,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또다른 한 주가 내 품에서 벗어난다.

  • 소망

    나태주

    가을은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 하는 시절

    거기 네가 있었음 좋겠다

    맑은 웃음 머금은
    네가 있었음 좋겠다.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 中